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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와 그 시대 (5)
申鉉夏  2020-08-06 14:43:10, 조회 : 216, 추천 : 30

그로부터 약 2년이 지난 겨울의 어느 날한국인 통역장교를 대동한 미군 장교가 직장에 찾아 왔다. ‘K’의 신원에 관한 질문이 있다는 것이었다당시 헌병 상사(上士)로 진급하고 있었던 ‘K’에게 중대한 임무를 맡기기 위해그의 신원에 대해 보증하는 사람이 필요했던 듯하다그래서 ‘K’가 보증인으로서 필자를 지명했기에조사관이 일부러 나에게 찾아 온 것 같았다“어찌된 일인지 설명해 주세요”라는 내 말에 대해군의 기밀이기에 더는 묻지 마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필자는 일의 자초지종을 모르는 체되도록 ‘K’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진술했다조사관이 돌아간 후군의 일에 자세한 동료에게 이 일을 말했더니만, ‘아마도 북한에 비밀리에 파견하는 공작원에 뽑힌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했다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그에게 득이 되었을까그 뒤 ‘K’의 소식을 알아보려고 애를 썼으나지금껏 그 누구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아들의 소식을 학수고대하던 ‘K’의 자당은노쇠함과 상심한 나머지 병상에 드는 일이 잦았다계절에 맞는 산채나 과일을 모친에게 나르는 일은자연히 며느리인 ‘K’부인이 맡게 됐다그러는 중아들의 귀환을 기다리다 지친 자당은 조용히 영면했다그 뒤에도 ‘K’부인의 우리 집 나들이는 계속되어나의 모친과는 마치 고부간 같은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필자의 모친도 세상을 떠난 뒤도서로 소식을 전하는 사이가 오늘까지 지속되고 있다한국전쟁에서 많은 젊은이가 전사 또는 부상을 입었는데, 1953년에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나서 6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아직껏 미귀환의 장병이 수 만에 이른다는 보도가 있은 지 얼마 되지 않는다.


1946해방의 기쁨이 아직 식지 않은 가운데서 태어난 ‘K 2그 영특한 자질과 근면 노력으로 인해영남지방의 유수한 교육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모범교사로서 신문지상에도 이름이 오를 정도의 교육자로서지방의 교육위원회에서 장학사장학관을 역임하고많은 초등하교 교장 직을 오랫동안 근무하다 정년 퇴임을 했다이미 노년기에 접어든 그가 필자를 찾아 와, “선생님을 아버지처럼 모시겠습니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그리고 외동 아들인 제가 2 3녀를 낳았으니까종가의 종손으로서의 역할도 충분히 다했습니다라고 자찬을 하고 있다정년 퇴임 후는 유유자적인 나날을 보내면서문중 회합에도 얼굴을 내밀고 지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K’와 그 시대를 적은 이 글은격동의 한국현대사의 한 단면을 얘기하고 있다그리고 필자의 인생의 한 측면과도 겹쳐 있다우연히 맺어진 ‘K’일가와의 기연은많은 추억을 실은 체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멀지 않아 ‘K 2의 칠순을 축하하는 모임에 초청을 받겠지이젠 노령인 사람이 원행을 할 수도 없으니축사로서 어떤 말을 적어 보낼까 하고 생각하면서 이 글을 맺는다.


2015년 이른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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